초등학교 1학년, 착한 어린이
우연한 기회에 평범한 사진 액자가 하나 생겼다. 별로 쓸모가 없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오랫동안 잡동사니처럼 처박아 두었다. 어느 날 집 정리를 하다가 이 액자에 들어갈 만한 사진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. 기념이 될 만한 사진이라도 있으면 좋고 아니면 별도로 특별히 멋있게 하나 찍어서 이 크기에 맞게 만들어 벽면에 하나쯤 걸어 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.
그러던 중 가끔 이사를 하면 부피도 많고 무거워 큰 짐 거리로 전락한 오래된 앨범들을 정리하다가 사진은 다 떼어내어 따로 보관하고 앨범은 버리기로 하였다. 그리고 오래된 사진들을 큰 플라스틱 박스 두세 개에 옮겨 담았다. 사진 크기가 모두 대동소이하였으나 유독 빛바랜 흑백 대형 사진을 하나 발견했다.
박스에 넣기도 쉽지 않아 이것을 어떻게 보관하나 생각하던 중 문득 그 사진 액자가 생각이 났다. 대충 크기를 맞추어 보니 비슷한 것 같아 사진틀에 끼워 넣었더니 일부러 맞춘 것처럼 딱 맞는 것이었다.
그 오래된 사진은 내가 국민학교 1학년 (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지만) 찍은 진짜 오래된 흑백 사진이다.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갓 입학한 후 어느 여름날 담임 선생님이신 이 수자 선생님 (나를 꽤 이뻐? 해 주신 것 같아서 지금도 존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) 이 학급 내 서너 명의 아이들을 불러 오늘은 사진 촬영을 해야 하니 방과 후 남으라는 것이다.
무슨 사진인가 했더니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린이들이 지켜야 할 바람직한 행동과 모범적인 자세들을 사진으로 찍어 크게 확대하여 교실 뒤편 게시판에 붙여 놓는다는 것이다. 한 학기 동안이나 계속 게시판에 붙여놓고 다른 아이들이 따라 하고 배워서 학교생활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. 그래서 한 학기 내내 붙여 놓았던 그 사진을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선생님이 그 사진을 각자에게 돌려주었던 것이다.
그 당시 사진을 그렇게 크게 찍는 것도 드문 일이었으니 아마도 학부모 중 한 분이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. 칼라 사진이란 건 아예 없었고 어두운 장소에서는 마그네슘? 조명탄을 터뜨리는 기술로 사진을 찍은 것 같다. 교실옆 복도인데 다른 친구들은 촬영 로케이션? 장소가 교실 안, 화단, 운동장 등인데 나는 교실 옆 복도에서 선생님이 지나가실 때는 이렇게 자세를 취하며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.
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그 당시 70여 명?이나 되는 급우들 중에서 픽업된 서너 명 안에 들어가는 착한 어린이었음에틀림없다. 지금 보니 살도 통통하게 붙어 그런대로 사진빨? 이 먹히는 모범 어린이었던 것 같다. 아쉬운 것은 하필이면 정면 사진이 아니라 15도 정도 아래를 내려다보며 인사를 하는 포즈이다 보니 얼굴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.
사실 복도를 걸어가다가 갑자기 정지된 자세로 두 발을 모으고 양팔은 허리에 가지런히 붙인 차려 자세로 선생님께 인사를 한다는 것이 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. 연출된 느낌이 확 와닿는다. 당시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라 내가 입은 옷은 모두가 어머니가 집에서 재봉틀로 손수 만드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. 상의 반팔 면셔츠로 칼라는 파란색 천을 덧붙여 포인트를 준 것 같다. 반바지는 조금 두꺼운 주황색 계열로 면 계통은 아닌 것 같다.
그 당시는 코 흘리개들이 입학을 하면 다들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그 위에 작은 비닐로 만든 이름표를 붙이고 다녔다. 멀리 뒤에 바닥에 보이는 것은 모자인데 초등학생들도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사계절용이라서 그런지 여름에는 흰색 카버천을 씌워 모자를 썼던 것 같다. 그런데 사진 촬영 시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보니 연출자? 가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.
사진이 구겨져 금이 가고 오른쪽 아래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까지 한 것을 그 평범한 사진 액자에 넣었더니 사이즈는 딱 맞는 것 같아 그런대로 옛 추억의 사진이 되기에는 충분했다. 벽 한 면에 걸어 둘까 하다가 촌스럽게 보여서 그냥 침대옆 작은 탁자에 올려놓고 오며 가며 자주 쳐다보곤 한다. 세월이 그렇게도 많이 흘렀나 싶을 정도로 나도 저런 애송이 코흘리개 시절이 있었나 싶다.
철 모르는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가 절로 떠 오르며 그 시절이 그립고 아련한 감정이 생기며 한편으로 흐뭇하고 편안한 마음이다. 오늘도 멀리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물끄러미 저 사진을 쳐다본다.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즐겨 듣는 YouTube 뮤직이 흘러나오며 잠시나마 감상에 젖어든다. 갑자기 이 선희의 "아~ 옛날이여"라는 노래가 생각이 나서 아래에 함께 첨부한다.
https://youtu.be/6-8X7 LS5Q90? si=dnTpGbG0 n6 qB60 RA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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